오늘은 졸업식 덕분에 방학 동안 고요하던 캠퍼스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졸업식이건만, 어쩐지 올해는 제 마음에 조금 다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제 기억 속 우리 학교의 졸업식은 늘 매서운 한파와 함께였습니다.
학위복 속으로 스며들던 칼바람을 견디며 제자들을 떠나보내던 날들이었지요.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공기가 부드럽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앞날을 미리 축복이라도 하듯, 교정 곳곳에 내려앉은 봄기운이 따사롭게 감돕니다.
이 햇살 아래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위복의 물결과, 환하게 웃는 제자들, 그리고 그 곁을 묵묵히 지켜온 학부모님들의 표정을 바라보니 스승으로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미 취업의 문을 당당히 통과한 학생도 있고, 여전히 꿈을 향해 신발 끈을 고쳐 매는 학생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모두가 이 눈부신 성취의 주인공'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문득 이 아이들이 막 입학했을 무렵,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학부모님들께 드렸던 약속이 떠오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마음이었습니다.
알 속에서 새끼가 스스로 껍질을 깨려 애쓰는 '줄(啐)'의 순간, 우리가 밖에서 조심스레 도와 껍질을 쪼아주는 '탁(啄)'의 정성으로, 아이들이 제 힘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오늘 그 약속에 작은 마침표를 찍으며,
저는 김성호 교수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속 한 대목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새끼를 키워낸 부모 새는, 새끼가 떠난 빈 둥지를 바라보며 곧장 숲으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혹시 스스로 떠난 것이 아니라 날갯짓이 서툴러 떨어진 것은 아닌지, 천적에게 위협을 받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며 나무 밑바닥과 숲속을 몇 시간이고 샅샅이 살핀 뒤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둥지를 떠난다고 합니다."
‘더 가르쳐줄 것은 없었을까’
오늘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우리 교수들의 마음도, 자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20여 년간 강단에 서왔지만, 제자들이 품을 떠나는 순간마다 대견함보다는 '더 가르쳐줄 것은 없었을까', '저 험한 세상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한 제자들의 단단한 눈빛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멀리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며 보냈던 '줄탁'의 시간들이, 그들의 날개에 깃든 단단한 힘이 되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을 위해 함께 애써주신 동료 교수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우리의 둥지를 떠나 '더 넓은 하늘로 비상할 제자들의 앞날'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축복해 주시게요.
🎼 함께 듣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