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의 안티고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펴낸 이호 교수는 엄흥도의 행동을 기원전 441년 소포클레스의 고전 비극 『안티고네』와 연결 지었다. 『안티고네』에서 크레온 왕은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법을 선포했으나 폴리네이케스의 누이 안티고네는 "그 명령은 제우스께서 내린 것이 아닙니다. 신들의 불문법은 영원하여 그 누구도 이를 어길 수 없습니다"라고 맞서며 오빠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렀다.
"국가 권력이 만든 실정법과 인간의 도리(천륜·자연법)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엄흥도는 당대 질서에 맞선 '조선 땅의 안티고네'였다."
‘악한 사람보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 위험’
"단종의 결말은 이미 알려진 역사다. 영화가 더 깊이 파고들었어야 할 지점은 엄흥도의 영웅성이 아니라 '엄흥도가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수많은 이들의 두려움, 가족에 대한 책임, 권력에 대한 굴종 등 '복잡한 내면의 지형도'다." 그래야 관객 스스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나는 엄흥도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군중인가' 묻게 된다.
‘우리 안의 엄흥도를 찾자’
"'사회를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악한 사람이 아니라 침묵하는 선한 사람들'이다. '왕사남'을 본 뒤 기성세대인 나는 '교수로서 대학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나' 반성하고 있다."
— 2026. 3. 21. 중앙일보 김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