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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인의 어깨' 법의학자 이호 교수, 죽음의 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비화
2024-07-28
"법의학자는 범죄 의심이 있는 변사체, 사법기관에서 의뢰한 부검을 통해 사인을 찾고, 사망의 종류를 밝힌다." 스스로를 "사법부검을 하는 학자"라고 소개한 이호 교수는 자신을 돌연변이라고 밝혔다.
"법의학자가 25년에 1명씩 생기는 꼴이다. 전국 법의학자 30여명 정도로 국민 150만명당 1명 꼴에 불과하다."
"혹시 내가 돌연변이가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을 위한 강의를 준비했다"는 이호 교수는 '내 선택이 옳은 걸까?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순간을 담은 인생내컷을 공개했다.
단두대 — 민주화 운동에서 법의학으로
당시 의대생이었던 이호 교수가 대학을 다녔을 시절은 군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울부짖던 시기였다. 사회에 책임을 느꼈던 그는 공부는 뒷전으로 두고, 집회를 따라다니고 선배들을 따라다니다 유급을 당했다.
그러다 맞게 된 '이철규 열사 사망사건'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1989년 5월 10일 광주광역시 한 수원지에서 한 구의 시체가 떠올랐다. 발견된 시신의 어깨와 얼굴에 구타의 흔적이 가득했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명 수배중이었던 정황으로 단순 사고가 아닌 고문치사 유기가 의심되었지만, 수사 당국이 발표한 결과는 '실족 후 익사'였다.
여러 경우의 수를 배제하고 익사라고 단정짓는 걸 본 이호 교수는, 외압에 의해서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이에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강의실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 2024. 7. 28. TV CHOSUN / OSEN 김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