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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병든 사회를 고치려한 루돌프 비르효의 신념으로… 인문으로도 치유하는 의사 많아져야
2025-07-16
법의학은 어떤 학문인가
법의학은 법과 관련된 의학적 문제를 연구하는 과로 영어로 'forensic medicine'이라고 한다. 법의학(Forensic medicine)이란 '공개 법정'(in open court) 또는 공공의(public)를 의미하는 라틴어 'Forensic'에서 유래된 말로, 법정에서 요구되는 여러 전문 분야 가운데 의학 분야를 뜻한다. 저는 범죄 부검에서 피해자의 사망 원인, 방식 및 사망 시간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북대병원에서 병리학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1998년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의학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모교인 전북대 의대 교수로 임용돼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만 연간 150건의 변사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사건에 대한 부검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부 강연을 통해 대중에 법의학을 알리는 데에 힘쓰고 있다.
법의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관심도 제고
법의학은 사회의학이다. 당시의 사람들 내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다루는 의학이기 때문에 시대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규장각문서를 통해 드러난 살인 사건을 보면 그 시대의 도덕관념이나 법 집행에 대해 알 수 있다. 시신만을 보는 직업이 아닌 주검을 둘러싸고 망인의 삶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직업적으로 삶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가졌던 지식과 경험을 동시대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고 마침 그런 기회들이 주어졌던 것 같다.
전작주의 독서
학창시절부터 책 읽기를 꽤나 좋아하긴 했다. 지금도 신문을 보면 책 소개란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읽고 싶은 책이 있을 경우, 금요일에 주문을 하고 주말에 책을 받고 집에서 주말독서를 할 때 기분이 정말 좋다. 독서방법으로 따지면 '전작주의 독서'를 좋아한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으며 작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독서방식을 '전작주의(全作主義)'라고 부르는데, 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일정 기간 동안 거기에 몰두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가령 소크라테스를 만났으면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플라톤전집이나 스토아철학 서적을 읽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한 작가를 만나면 그가 쓴 모든 저서를 섭렵해 그 작가의 세계관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다. 일상에서도 문뜩 가슴에 와닿는 시나 그림, 문장들을 보면 모아두고 정리하는데, 그게 책을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루돌프 비르효의 신념
"의사는 단순히 질병만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말은 제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루돌프 비르효(Rudolf Ludwig Karl Virchow)'라는 유명한 병리학자가 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 의료행위다. 모든 질병은 세포로부터 시작된다. 세포를 에워싸는 환경에 의해 세포는 병들어간다." '독일 의학의 황제', '사회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는 이같은 명언을 남겼다. 1902년 9월 5일 그가 죽었을 때 독일 신문은 다음과 같은 부고를 싣기도 했다. "우리는 한 명이 아니라 병리학자, 인류학자, 위생학자, 진보주의자 이렇게 네 명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사회가 병든 유기체라면 의사와 정치가는 치료자이며 국가는 그들이 효과적으로 치료하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건강'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자산'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가 있다는 비르효의 신념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고 이런 점을 널리 공유하고 싶다.
의사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한 이유
의학교육에 정작 '인간'을 이해하는 교육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인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의학교육의 시작이 인체에 대한 정상구조를 익히고, 질병에 대해 배우고, 환자·의사와의 관계를 배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과연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언제 배우는지가 아쉬운 대목이다. 의사에게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다.
'위약 효과(placebo)'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은 믿음에 의한 자연치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도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없이 던져지는 말은 오히려 자연치유 능력마저도 낮출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의사는 자신의 육체가 아닌 자신의 영혼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공감(empathy)을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put yourself into someone's shoes)이라고 했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
비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견했다. 식물성장에 필요한 여러 영양분 중 다른 모든 것이 아무리 많이 공급돼도 최소량으로 주어지는 하나의 영양분에 의해 그 성장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설령 의사의 능력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도덕성이나 인성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법의학적 성찰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삶의 진짜 의미를 처음으로 묻기 시작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들은 늙어가는 것들뿐이다. 나무의 맨 끝인 새순마저도, 지금 막 태어난 아이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언제든지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때 마지막 통화 내용은 미움이나 원망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보고싶어'가 주된 통화였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는데 우리를 막는 장애물이 있을 수 있을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에 나오는 '머지않아 떠나갈 것들을 격렬히 사랑하라(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ere long)'를 되새겨본다.
— 2025. 7. 16.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