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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집단위 광역화, 누구의 시간을 실험하고 있는가

2026-03-25

"광역화의 부담을 감당한 학생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더 철저한 평가와 대안이 필요하다." 선택지 확대는 학습권 보장이 아니다 우리대학은 글로컬사업 핵심 과제로 모집단위 광역화와 전공 선택권 확대를 내세웠다. 학생이 원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겠다는 취지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해서 학생의 권리가 곧바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선택의 폭은 늘었는데 그 결과를 감당하는 책임만 학생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은 자율성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전가에 가깝다. 대학이 정말 학생 중심을 말하고 싶다면, 더 많이 고르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제대로 배우게 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같은 광역화·자유전공 흐름 안에서도 대학마다 실제는 다르다. 고려대·한경국립대·강원대는 전공 선택 보장과 상담 지원을 더 전면에 두고, 서울대는 전공 탐색과 설계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둔다. 반면 전북대의 실제 전공배정은 1학년 평점 평균, 이수학점 가점, 적성 교과목 가중치, 동점자 기준까지 포함된 경쟁 구조 위에서 이뤄진다. 학생이 체감하는 현실은 자유로운 탐색보다 성적 관리와 전략적 계산에 가깝다. 설문이 드러낸 것: 만족도가 아닌 어려움의 실체 총학생회 길거리 설문 결과도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이 설문은 224명이라는 제한된 표본의 현장 조사이기에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여론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표본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설문에서 반복해서 드러난 문제의식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1학년은 희망 전공 미배정에 대한 불안, 정보 부족,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요구했고, 2학년은 학업 부담, 전공 기초 부족, 상담·적응 지원과 커리큘럼 개선 필요를 지적했다. 핵심은 만족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고 무엇을 요구하는가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대학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광역화로 상처 입은 학생들의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한 차례 지나가버린 학습의 기회, 전공 형성의 시간, 진로를 준비할 수 있었던 시기는 복구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광역화를 미화하거나 추상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 학생들이 겪고 있는 손실의 무게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 책임 위에서 분석과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구호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우리 대학이 바꿔야 할 것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다. 선택지보다 '어떻게 실질적인 학습권을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 일부 전공군에 대해서라도 최소 진입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모든 학생에게 무조건 희망 전공을 보장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학생에게는 적어도 유사 전공군 안에서 학업을 이어갈 최소한의 통로를 열어두자는 것이다. 둘째, 1학년 전공탐색의 의무 상담·지원 체계를 구축해 정보 비대칭을 줄여야 한다. 학생에게 선택을 요구했다면,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와 조언 역시 대학이 책임져야 한다. 셋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학생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전공 선호도, 경쟁 강도, 배정 기준과 결과를 익명화해 공개해야 학생은 불확실성 대신 근거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 넷째, 대학은 선택 실패의 회복 가능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희망 전공 미배정에 실패한 학생에게 복수전공·부전공·제이동, 관련 교과목 수강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선택이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구조라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선별에 가깝다. 다섯째, 성적·가점 중심의 현행 배정 구조를 완화하고, 전공 탐색 과정과 학업 설계 경험을 더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은 점수 경쟁이 아니라 실제 탐색과 성장의 경험 속에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 '선택권'보다 '학습권'이 먼저 진짜 학생 중심 대학은 많이 선택하게 하는 대학이 아니라, 어떤 선택 앞에서도 배움을 지속할 수 있게 책임지는 대학이다. 광역화가 교육 혁신이 되려면, 선택권보다 학습권이라는 원칙부터 분명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이미 지나가 버린 학생들의 시간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대학의 책임 있는 성찰이어야 한다. — 2026. 3. 25. 전북대학교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