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첫 단추로 거점국립대 9곳 가운데 3곳을 우선 선정해 학교당 1000억 원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선정 기준은 지역 성장엔진 산업과의 연계성, 대학의 준비도, 인프라 수준이다. 표면상 ‘선택과 집중’의 합리적 행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결정의 근저에 놓인 질문은 단 하나다. "지금까지 누가 가장 잘해 왔는가." 그리고 바로 이 질문이, 정책의 본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본래 정신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처음 제안한 구상은 SKY 중심의 좁은 고속도로가 만든 병목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핵심은 분명했다. 여러 거점국립대에 서울대급 집중 투자를 진행하고, 그것이 성과로 축적될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 이러한 구상이 던진 질문은 "누가 잘해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시간을 부으면 새로운 거점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였다. 그러나 정부 실행안은 ‘3곳 우선+인프라 기준’으로 변형되며, 이 질문 자체를 슬며시 바꿔치웠다.
인프라란 본디 과거 투자의 누적물이다. 지금까지 어디에 더 많이 부어졌는지의 결과치이지, 미래 가능성의 척도가 아니다. 누적된 인프라를 기준으로 다시 선정하면 정책은 세 가지 함정을 동시에 떠안는다. 격차의 재생산, 잠재력의 비가시화, 시간 지평의 단축이 그것이다. ‘잠재력은 측정된 후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된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1960년대 시점에 ‘지금까지의 인프라’만으로 줄을 세웠다면, 오늘의 UC 샌디에이고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가뭄이 든 들녘에서 관개 정책을 짤 때, 행정의 가장 안전한 선택은 이미 잘 자라고 있는 묵은 논에 먼저 물을 대는 일이다. 토질이 좋고, 작년에도 잘 자랐고, 통계도 깔끔하다. 그러나 그렇게 물을 대고 또 대는 사이, 새로 갈아엎은 자리와 모가 들어가지 않은 빈 논은 끝내 마르고 만다. 시간이 지나 보면 들녘 전체의 수확량은 늘지 않는다. ‘묵은 논만 더 굵어지고, 빈 논은 더 갈라진다.’
지난 20여 년 한국 고등교육 재정사업의 풍경이 정확히 그러했다. 두뇌한국21(BK21), 대학특성화사업, 글로컬대학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대규모 사업은 일관되게 ‘준비된 곳’에 먼저 물을 댔다. 합리적이었고 측정 가능했다. 그러나 누적된 결과는 분명하다. 수도권 상위권 대학의 두께는 더 굵어졌고, 지역대학의 갈라짐은 더 깊어졌다. 잘해 온 곳이 다시 잘하게 되는 동안, 새로운 거점은 어디에서도 자라지 않았다. 이는 정책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관성 문제다. 같은 좌표계 위에서 같은 기준으로 다시 선정하는 한, 결과는 매번 같은 자리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밀한 점수표가 아니라, 점수표 자체를 백지에서 다시 그리는 사고다. 묵은 논만 보지 않고 물길 자체를 다시 그리는 일, 그것이 제로베이스(Zero-Base) 사고다. 평가지표도 그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현재 보유한 시설·예산이 아니라 10년 후 형성 가능한 잠재 가치, 이미 형성된 산업 클러스터가 아니라 신규 형성 가능한 융합 가능성, 5년 사업 단위가 아니라 최소 20년 축적 단위의 마스터플랜, 그리고 무엇보다 ‘잠재 변화폭(Potential Delta)’이 평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투자가 들어갔을 때 변화할 수 있는 폭을 평가하지 않는 한, 정책은 설계의 언어를 잃고 보상의 언어로 전락한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는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가진 송나라 집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약은 빨래꾼의 손에 있을 때는 평생의 생계 도구였지만, 오나라 왕의 수전(水戰)에 놓이자 나라를 가르는 자산이 되었다. 같은 약, 같은 손, 같은 겨울이었으나 놓이는 자리와 시야가 달랐다. 자원의 가치는 자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자리와 시간이 결정한다는 오래된 통찰이다.
지금 한국 고등교육 정책 앞에 놓인 질문도 다르지 않다. ‘누가 지금 잘해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시간을 부으면 새로운 거점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여야 한다. 묵은 논에만 물을 대는 관개로는 들녘이 살아나지 않는다. ‘잘해 온 곳’을 다시 고르는 정책은 과거를 보상할 뿐,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 ‘잠재력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며, 길러지기 위해서는 먼저 선정되어야 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우선 선정 절차를 본격 가동하기에 앞서, 평가의 좌표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3개 대학의 명단이 아니다. 고등교육 정책이 미래를 향해 던져야 할 질문 자체다. 그 질문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구호에서 가능성으로 옮겨가는 첫 단추일 것이다.
— 2026. 5. 4.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