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칼럼
위기의 대학: '아무도 아닌 자'의 지혜로 학내 민주주의를 되찾자
2025-01-18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의 왕 오디세우스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숨기고 스스로를 "아무도 아닌 자(영어: No one, 그리스어: Outis)"라 칭하며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났습니다. 가장 강해 보여야 할 순간에 오히려 자신을 낮춘 선택이 위기를 벗어나는 지혜가 된 것입니다. 그의 기발한 기지는 거인의 눈을 멀게 한 뒤, 주변 거인들이 "아무도 아닌 자가 나를 해쳤다"는 폴리페모스의 절규를 듣고 발길을 돌리게 함으로써 오디세우스와 그의 동료 대원들 모두를 절망적인 동굴에서 구원하고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 대학에도 묻습니다. 위기의 시대, 우리의 리더십은 과연 얼마나 자신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최근 우리 대학은 글로컬대학30 추진 과정에서의 구조개편, 모집단위 광역화, 학과 및 사업단 신설에 따른 인력 재배치, 그리고 가장 최근의 교수 승진요건 강화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결정들을 연이어 맞이했습니다. 변화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구성원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결정의 내용보다도 그 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숙의, 공감이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학의 변화가 '논의'가 아닌 '통보'로 받아들여질 때,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구성원들은 지금 따져 묻고 있습니다. 대학 공동체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답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첫째, 중요한 정책일수록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반대 의견도 끝까지 듣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니라, 결론이 열려 있는 진짜 토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둘째, 총장과 본부는 '결정하는 사람'이기 전에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성원 각자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신뢰할 때, 정책은 더 단단해집니다.
셋째, 결과에 대한 책임 만큼이나 과정에 대한 신뢰를 중시해야 합니다. 12.3 비상계엄 해제 과정에서 국회가 보여준 과정의 정당성이 그러했 듯, 과정이 온당하다면 구성원은 어려운 결정도 함께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넷째, 리더는 '아무도 아닌 자'의 시선으로 공동체를 포용해야 합니다. 리더로서의 자아에 갇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묵살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책만을 고수한다면, 이는 대학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갈등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아무도 아닌 자'의 시선은 자신의 지위와 배경 등 고정된 정체성을 잠시 벗어나, 그저 '대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동반자'로서 모든 구성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한 번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자신의 이름과 역할, 자신의 주장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용기, 그리고 겸손함이야말로 복잡한 현대 사회의 난제뿐 아니라 대학의 위기를 풀어낼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구성원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은 선출직 총장님께서는 그 어떤 임명직 총장보다도 겸손한 자세로 학내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나'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아무도 아닌 자'의 지혜를 발휘하여 더 큰 '우리 대학'을 위한 새로운 길을 발견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전북대학교가 결정의 속도보다는 숙의의 깊이를, 성과의 크기보다는 공동체의 신뢰를 우선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권한이 아니라, 더 낮은 자세의 리더십입니다. '아무도 아닌 자'의 지혜가, 다시 우리 대학을 살리는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2025. 1. 18. 전북대학교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