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후 5시의 품꾼과 공정수당

2026-04-29

성경 마태복음 20장에는 경제적 효율성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포도원 비유가 등장한다.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일꾼을 모은다.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퇴근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에도 거리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데려다 일을 시킨다. 일과가 끝나자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은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린 자와 고작 한 시간 일한 자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치 일당을 건넨다. 먼저 온 자들의 항의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 비유의 본질은 액수의 평등이 아니라 시선의 전환에 있다. 오후 5시가 되도록 일거리를 얻지 못한 이들은 게으른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를 써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끝내 선택받지 못해 초조하게 하루를 보낸, 우리 사회의 남겨진 자들이다. 주인은 먼저 온 자의 성실함만 본 것이 아니라, 끝까지 불리지 못할 뻔한 사람의 고단한 하루를 함께 본 것이다.


이 장면을 오늘의 노동 현실에 투영하면 그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노동시장에서 늦게 선택되는 이들은 대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이, 건강, 경력 단절, 장애 등 사회적 취약성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선택된 자는 내일의 기회도 보장받지만, 끝까지 남겨진 자는 오늘의 임금은 물론 내일의 생존까지 불안하다. ‘진정한 공정이란 단순히 노동 시간만 따지는 산술적 계산을 넘어, 누가 더 오래 배제되었고 누가 더 큰 불안 속에 놓여 있는지를 헤아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도입을 결정한 공공부문 공정수당은 정책적 함의가 깊다. 내년부터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에게 계약 기간이 짧을수록 더 높은 비율(8.5~10%)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간 364일, 11개월 식의 쪼개기 계약으로 퇴직금을 피하고, 단기 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과 적은 복지를 강요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다.


현장의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 중 절반이 1년 미만 단기직이며, 이들은 일반 기간제보다 평균 9만 원 적은 임금을 받으며 고용 불안을 감내해 왔다. 공정수당은 "덜 일한 자에게 돈을 더 얹어주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고용 불안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노동자 개인이 아닌 사회가 분담하는 제도’에 가깝다. 노동의 양이 아니라 불안의 무게를 보전하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성경은 인간의 계산법을 흔드는 윤리의 언어이고, 정책은 예산으로 현실을 조정하는 행정의 언어다. 그러나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먼저 선택된 자의 성실함만 기준으로 삼지 않고, 늦게 선택된 자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도원 주인이 마지막 사람에게 하루를 살아낼 최소한의 몫을 보장했듯, 공정수당은 고용이 짧을수록 커지는 생계의 공백을 임금으로 메우려는 회복적 시도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공정을 "같이 일하면 같이 받는 것"으로만 정의해 왔다. 그 원칙은 소중하지만 충분치 않다. 출발선이 다르고 다시 기회를 얻을 가능성조차 불공평한 현실에서, 기계적인 평등은 오히려 가장 가혹한 불공정을 낳을 수 있다. ‘이제 공정은 기여의 양을 세는 계산기를 내려놓고, 취약함의 크기를 살피는 입체적 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포도원 비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명하다. ‘우리는 먼저 온 사람의 억울함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불리지 못해 불안해하던 이의 절박함을 함께 보고 있는가. 공정수당이 단순히 임금 보전 책을 넘어, 덜 보호받는 이의 불안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약속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공정 개념을 한 걸음 더 진보시키는 길이다.


— 2026. 4. 29.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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